성숙한 방어기제 12가지 ⑦
동일시 (Identification)
준호는 20대 초반의 신입 사원이었다. 첫 직장에서 그는 자주 실수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어느 날, 회사에 새로운 부장이 부임했다. 김 부장은 따뜻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리더였다.
준호는 김 부장의 일하는 방식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떻게 저렇게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시지?"
시간이 지나면서 준호는 김 부장의 특성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법, 팀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태도.
6개월 후, 준호의 동료가 말했다.
"너 요즘 많이 달라졌어. 김 부장님 닮아가는 것 같아." 준호는 미소 지었다. 그는 단순히 김 부장을 모방한 게 아니라, 그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준호는 일기를 썼다. "오늘도 한 걸음 성장했다. 나의 롤모델이 되어준 김 부장님께 감사하다."
준호는 이제 알았다. 성장은 존경하는 이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임을.
발달심리학자 에릭슨(Erik Erikson)은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에 나타나는 건강한 동일시가 정체성 형성의 핵심 요소라고 밝혔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적절한 역할 모델과의 동일시는 개인의 성장과 자아실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일시를 경험한다. 어린 시절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투나 제스처를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에 영향을 받아 글쓰기 스타일이 바뀌는 경험이 그렇다. 마치 거울처럼 타인의 긍정적인 면을 반사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성공한 CEO들이 이전 멘토의 경영 철학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젊은 예술가들이 거장의 기법을 학습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발전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운동선수가 롤모델의 훈련 방식과 마인드를 받아들여 성장하거나, 치료사가 존경하는 선배의 상담 기법을 내면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동일시는 단순한 모방과는 다르다. 마치 요리사가 다양한 레시피를 배우고 이해한 뒤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내듯, 우리도 타인의 장점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여 자신의 일부로 만든다. 이는 개인의 성장을 돕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건강한 자아 발달의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