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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신경증적 방어기제 11가지

고립 (Iso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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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증적 방어기제 12가지 ⑥ 


고립 (Isolation) 


 




수현은 의사로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왔다. 어느 날, 그녀는 병원에서 무거운 상황에 직면했다. 오랫동안 치료하던 어린 환자가 끝내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동료 의사와 간호사들은 모두 침울해 있었지만, 수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분하게 일을 처리했다.


환자의 가족이 와서 상황을 물었을 때, 수현은 감정 없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환자의 상태는 악화되었고, 마지막 치료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사망 시간은 3시 45분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기계처럼 차가웠고, 눈빛도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환자의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빠져 있었지만, 수현은 그저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수현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녁을 먹고 TV를 보았다. 하지만 가끔씩 어린 환자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그녀는 감정을 차단한 채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저 치료가 실패한 케이스일 뿐이야. 더 이상 생각할 필요 없어."


수현은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고립시키고 있었다.

 



응급실 의사가 심각한 환자를 다룰 때 마치 기계처럼 차갑게 의료 절차만 진행하거나, 장례지도사가 고인에 대해 업무적으로만 대하는 모습이 대표적인 고립의 예시다. 상담사가 내담자의 극심한 트라우마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감정적 동요 없이 사실관계만 확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마치 컴퓨터가 데이터를 처리하듯 감정을 완전히 차단한 채 상황을 다루는 것과 같다. 고통스러운 현실이나 감당하기 힘든 경험을 다룰 때, 우리는 때때로 감정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오직 사실과 논리만으로 상황을 바라보려 한다.



일상에서도 이런 고립은 자주 발견된다. 이혼 서류를 작성하면서 마치 업무 문서를 다루듯 담담하게 처리하거나,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안락사를 결정할 때 철저히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그렇다. 또는 실연의 아픔을 분석하면서 "이건 단순히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문제야"라며 과학적 설명에만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하버드 의대의 헨리 크리스탈(Henry Krystal) 박사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연구하면서 극심한 트라우마가 감정과 인지의 해리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고립은 단기적으로는 극심한 고통을 견디게 해주는 적응적 방어기제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감정적 둔감화와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최근의 신경과학 연구들은 이러한 고립이 뇌의 감정 중추와 인지 처리 영역 간의 연결을 일시적으로 차단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