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한 방어기제 12가지 ⑫
내향화 (acting in)
서연은 부모님의 이혼 소식을 들은 후로 더욱 모범생이 되었다. 밤늦게까지 공부했고, 학교에서는 늘 웃으며 지냈다. "서연이는 정말 긍정적이야. 저런 일이 있었는데도..."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달라졌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서연은 손톱으로 손목을 긁었다. 아프단 생각보다는 이게 당연하다고 느꼈다. 일기장에는 매일 같은 말만 적었다. "난 잘못한 게 없어. 난 잘못한 게 없어..."
담임 선생님이 물었다. "서연아, 요새 너무 말랐다? 밥은 잘 먹고 있니?"
"네, 걱정마세요. 전 정말 괜찮아요."
하지만 매일 밤, 서연은 자신의 팔을 꼭 껴안은 채 잠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렇게 아팠다.
우리는 때로 분노나 슬픔, 불안 같은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고 삼켜버린다. 마치 압력밥솥 속 끓어오르는 증기처럼, 이런 감정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내면에서 맴돈다. 이렇게 감정을 안으로 삼키는 것이 바로 내향화다.
카렌 호나이는 이러한 내향화가 어린 시절의 정서적 억압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착한 아이"로 자라야 했던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을 불편해하며, 대신 그것을 내면화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일상에서 이런 모습은 쉽게 발견된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괜찮아, 참자"며 넘어가거나, 친구와의 갈등 상황에서 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내향화 경향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런 내향화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식욕이 떨어지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 신체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심한 경우에는 자해나 폭식과 같은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SNS에서 우울한 게시물만 반복적으로 보는 '우울 스크롤링'도 내향화의 현대적 표현으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