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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미성숙한 방어기제 12가지

해리 (Di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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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숙한 방어기제 12가지 ⑪ 


해리 (Dissociation) 


 



지은은 대형 교통사고 이후로 뭔가 달라졌다. 사고 당시 차가 전복되는 순간, 지은은 자신이 차 밖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종종 그런 경험이 찾아왔다.


중요한 회의 중에도 갑자기 자신이 천장에서 회의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2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15% 상승했으며..."


마치 다른 사람이 발표하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동료들은 지은의 변화를 눈치챘다. "요즘 좀 이상해. 멍한 것 같아." 하지만 지은은 대답했다.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퇴근길, 지은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그런데 거울 속 사람이 낯설게 느껴졌다.  '저기 서 있는 게 정말 나일까?' 지은은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현실을 견딜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은 걸까?

 



하버드 트라우마 센터의 밴 더 콜크(Van der Kolk) 박사는 20년간의 연구를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교통사고나 폭력 등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의 약 70%가 해리 현상을 경험하며, 이는 뇌가 극심한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동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전쟁 참전 군인이 폭죽 소리에 갑자기 멍해지거나, 가정폭력 피해자가 위협적인 상황에서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게 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시험을 망친 학생이 며칠간 '멍한 상태'로 지내거나,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갑자기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는 것도 해리의 한 형태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가벼운 형태의 해리를 경험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것을 깨닫거나, 책을 읽다가 한 페이지를 계속 반복해서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이 그렇다. 운전 중에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의식은 때로 현실에서 살짝 빠져나와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려 한다. 마치 컴퓨터의 '절전 모드'처럼,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잠시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가벼운 해리는 일시적인 휴식을 제공할 수 있지만, 이것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심해진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